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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피서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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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07회 작성일 21-08-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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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각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백령사 주지

흔히 ‘피서 간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강더위(비 없이 내리쬐는 더위)가 쨍쨍한 곳으로 가는 것은 피서일까. 휴가일까. 정답은 여름휴가다.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떤 이는 자신의 체력을 고갈하는 일도 있다. 피서는 말 그대로 “더운 날씨를 피한다.”라는 뜻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일로 무더위(습도가 있는 더위)가 넘실대는 바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속셈은 무엇일까. 예로부터 나무 그늘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 정자에서 강더위를 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피서법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수박과 참외 등 여름 과일을 먹는 즐거움은 피서의 고전이다.

오늘날 여름나기는 그야말로 극락이요. 천국인 셈이다. 에어컨 바람에 대해 말하지 않더라도 모기와 파리 등에게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해방된 세상이다. 밤에는 모기와 낮엔 파리와의 전쟁을 벌이던 진풍경은 2000년대 이전, 여름날의 일상이었다. 만약,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이 도회지 호텔에서 보낸 여름은 천국 이상의 세상일 것이다. 한두 달 정도는 그 사람에게 호텔 숙식은 극락일 거다. 그런데 그 사람은 무덥고 녹록한 자기 고향으로 다시 가겠다고 원한 사례도 있다. 아마도 옛 선인들이 우리들의 여름철 문화를 접한다면,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할 게다. 요즘 선풍기 바람을 싫어하는 사람과 달리 에어컨 바람 없이 못 사는 이들의 문화와 습관 차이가 그만큼 큰 것을 알 수 있다. 불볕더위, 찜통더위, 삼복더위를 피하고 이겨 냈을 우리 조상들의 피서는 부채와 자리 깔개 등 피서 용구를 썼다. 중국 당나라 때의《극담록》에도 등장한 신라의 ‘백룡피(白龍皮)’는 오늘날 에어컨, 선풍기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신라 스님들이 가지고 간 백룡피는 천마의 일종으로, 방안에 깔고 물을 뿌리면 냉기를 뿜어 방안이 시원해진다고 전한다. 또 시원한 바람이 절로 나서 방안에 냉기가 가득 찬다고 알려진 신라의 부채 용피선(龍皮扇)과 송나라 때 소동파가 부채질하면 향내 나는 고려의 백송선 부채를 예찬한 것으로 보아 중국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다.

또《흥부전》에 나오는 용피선, 밖에서 들어오는 더운 바람이 이 발에 닿으면 찬바람으로 변해 방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는 자초장(紫綃帳)까지 등장한다. 중국 양귀비는 얼음 병풍을 치고, 물레방아 부채로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빙잠옷으로 호사스런 피서를 했다. 우리 선조들은 고죽엽처럼 생긴 풀인 앙량지초 또는 영랑초를 창가에 놓고 시원한 바람을 불러들여 삼복더위를 식히는 화초냉방의 피서를 했다. 연꽃 잎줄기 대를 사용하는 벽통음이라는 풍류 피서와 대청마루에 정자 상을 만들어 생활하고, 마루 밑 바람을 끌어 올려 더위를 쫓는 양대(凉臺)라는 피서법도 있다. 조상들의 피서 백경에는 죽부인, 등거리, 등 토시를 이용하고 산에 올라 상투, 총각머리를 풀어 바람에 날려 더위를 날리는 바람 빗질인 풍즐(風櫛)과 계곡물에 발 담그는 탁족, 등목의 피서는 너무나 소박했다. 요즈음에 있어 지난날의 피서법은 무의미할 수 있겠지만, 우리 조상들의 피서는 기후환경 문제에 관한 새로운 성찰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의 미발달로 누리지 못한 시절로 해석할 수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이기의 이면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분분하다. 자연에 동화하여 부작용 없는 일거양득의 피서법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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